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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1-27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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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일기 25 “난 오른 새끼는 꼴지 몰라. 어릴 때부터 내가 새끼를 꼬면 왼새끼라고 하더라구”

고향으로 돌아온 송영호 선생의 안성일기 102

기사입력 2021-01-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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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극한의 슬픔이나 고통을 당할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를 인용하며 자신을 위로할 때가 있다. 1년 가까이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의 우리가 누렸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으며 하고 싶은 것도 참고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

요즘 나는 10년 가까이 일주일에 두세 번 글을 올리고 소통했던 페이스북도 쉬고 있다. 대나무는 마디를 만들며 성장하고 겨울을 이겨낸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나도 긴 호흡으로 나를 돌아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1. “(성탄절 아침 식탁에서 아내에게) 성당도 가지 못하는데 우리 모처럼 드라이브를 갔다가 점심은 밖에서 먹고 오자

“(신앙심이 돈독한 아내. 성탄절에도 미사에 가지 못하는 아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밖에서 먹는 거 싫어

하긴. 요즘 분위기로 밖에 나가 밥을 먹는다는 것도 그렇네

가톨릭신문에 공세리 성당 일대를 산타 마을로 만들어 성당 주변의 소나무와 벚나무에 LED 전구로 트리를 만들어 놓아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밤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내가) 공세리 성당에 가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알고) 오늘은 거기 가면 주변에 차가 많아 꼼짝도 못 할 거야. (공세리 성당은) 평일에 갑시다

결국, 우리는 외식과 드라이브를 포기하고 미루어 두었던 창고 정리를 했다.

#2. 이장을 맡고 처음으로 마을에 상이 생겼다. 평상시 같으면 유족들이 부담한 비용으로 부녀회 주관으로 회관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장지에 음식을 가져가 마을 사람들이 묘지를 만들고 달궁질을 하면서 음식을 나눠 먹었다. 장례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모여 유족들이 식사를 하고 마을 사람들도 장례 뒤풀이로 음식을 나눈다.

“(부녀회장에게 전화해서) 음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유. 코로나 때문에 회관에서 음식을 할 수가 없잖아

“(잠시 후 부녀회장이) 컵라면으로 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유. 날이 추우니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 하잖아. 회관에 물 끓이는 거 있으니까. 그거 가져다가 물 끓여서

포장 용기에 물만 붜서 먹는 오뎅도 있던데

“(동네 형에게 전화해서) ? 달궁질을 해야 하나?”

해야지

빈소를 찾아가 유족들과 장례 절차에 대해 상의를 하고 음식을 차리는 것에 대한 유족들의 의견을 들었다. 외식 업체에 60인분의 음식을 주문해 장지에 가져오기로 했다고 한다.

아침 일찍 달궁질에 쓸 산내끼(새끼)를 꼴 짚을 추려 챙기고 마을회관에서 삽과 괭이를 준비해 장지로 갔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몇몇 와 있었고 굴삭기가 고인이 묻힐 땅을 만들고 있었다. 상조회사에서 모든 것을 하기로 되어있어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외식업체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술을 마시며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와 마을에 상이 있을 때마다 나는 달궁질에 사용하는 새끼를 준비했다. 사람 키 정도 되는 봉에 외로 꼰 새끼를 매달아 고인의 저승으로 갈 때 쓰라고 유족들에게 노잣돈을 받아 새끼에 끼워놓았다가 그 돈을 마을 기금으로 사용한다.

“(새끼를 꼬고 있는 내게 동네 후배가) 왼새끼를 제대로 꼬네

난 오른 새끼는 꼴지 몰라. 어릴 때부터 내가 새끼를 꼬면 왼새끼라고 하더라구

땅에 관을 묻고 굴삭기로 어느 정도 흙을 채운 후 달궁질을 할 때가 되었다. 달궁질 할 때 선창을 메기는 70대 후반 형이 셋이 있는데, 두 분은 건강이 좋지 않고 창범(79)이 형에게 부탁했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 못하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선창도 없이 땅을 다지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창범이 형이 가세해서 선창을 했다. 선창을 시작하고 달궁질을 한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형은 힘이 든다고 하시며 빠지셨다. 열 명 정도가 땅을 다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밖에는 선창을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상황.

“(큰 소리로) 앞으로 내가 신식으로 선창을 할게

~헤이 다알궁~ ~헤이 다알궁~ / 연지찍고 곤지찍고 에~헤이 다알궁~ /우리동네 시집와서 에~헤이 다알궁~ /결혼생활 육십삼년 에~헤이 다알궁~ / 이제가면 언제오나 에~헤이 다알궁~ / 우리 인생 별거있나 에~헤이 다알궁~ / 돈병철도 죽었다네 에~헤이 다알궁~ / 이건희도 죽었다네 에~헤이 다알궁~ / 별거없는 우리인생 에~헤이 다알궁~ / 빈손으로 가는구나 에~헤이 다알궁~ /살아보자 살아보자 에~헤이 다알궁~/ ~하게 살아보자 에~헤이 다알궁~ / 불쌍해라 불쌍해라 에~헤이 다알궁~ /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저씨도 불쌍해라 에~헤이 다알궁~ / 이 겨울의 긴긴밤을 에~헤이 다알궁~ / 외로워서 어떡하나 에~헤이 다알궁~

송영호 전 계성여자고등학교 교사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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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성향
    2021- 01- 08 삭제

    선생님 아니 이장님 ! 복 받으실거유~^^ 좌새끼 가 꼬인다는 말씀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전교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