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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면민의 항쟁- “주재소에 불이 확산 되자,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연재] 김태수 전 안성3.1운동기념관장 편찬 ‘신문조서에 의한 안성4.1독립항쟁, 2일간 해방사’ - 24

기사입력 2021-08-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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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국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에서 안성군 원곡면·양성면은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과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과 함께 만세운동의 목적인 독립을 위해 무력을 동반해 치열하게 저항했던 3대 실력 항쟁지 중 한 곳이다.


그리고 그 항쟁을 통해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하게 191941일과 2일 일제를 완전히 몰아내고 해방을 쟁취해낸 곳이 안성 원곡·양성면 3.1만세 운동이었고, 그 원곡·양성 만세 운동을 포함해 안성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일제에 저항했던 것이 
안성3.1운동이다.

 

이에 당신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의 자손이기도 한 김태수 전 안성3.1운동기념관장이 신문조서(訊問詔書)’ 기록을 중심으로 <안성4.1독립항쟁, 2일간 해방사>를 발간하고 게재를 위해 본지에 보내와 이를 연재한다.

 

<주재소> -

이인군(李仁君)은 이유석(李裕奭)의 권고에 따라 주재소 안의 처마 끝에 짚으로 만든 횃불로 불을 붙였고, 최세익(崔世翊), 이덕순(李德順), 이규철(李圭喆), 이성률(李聖律), 이유직(李裕稷), 소휘태(蘇輝泰), 한춘식(韓春植), 김희경(金熙敬,金永熙), 이규창(李奎昌) 이금철(李今哲), 허자삼(許玆三) 등은 사무실에 들어가 의자, 책상을 부수었으며 서류를 끄집어내어 불속에 던졌고, 이규철(李圭喆)은 사무실 유리문을 발로 차서 깨트렸고, 김희식(金熙植)은 사무실 안에 들어가 의자 2개를 부수었으며, 최재옥(崔在玉)이 사무실 안에서 서류 등을 들고 나 오고 거기에 이덕순(李德順)이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고 이규철(李圭喆)이 진술했다.

이백석(李白石)과 남현서(南玄西)가 솔가리를 가져오라고 하므로 가져다 주었더니 그것에 남현서(南玄西)와 조경수(趙敬洙)가 방화했다고 진술했다. 김필연(金必然)은 홍창섭(洪昌燮)이 준 성냥을 받아 가지고 취사장으로 가서 쌓여있는 솔가리에 불을 붙여 태웠다. 원곡면장 남길우(南吉祐)가 증언하기를 솔선해서 폭행한 사람은 이유석(李裕奭), 최은식(崔殷植), 이덕순(李德順), 이근수(李根洙), 남현서(南玄西), 이백석(李白石), 김원순(金元順), 김희식(金熙植), 김순서(金順西), 소선옥(蘇先玉) 등으로 그 사람들은 투석하고 다음에 사무실 등에 방화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덕순(李德順), 남현서(南玄西), 이병덕(李炳德) 등은 서류, 장부를 모아 그곳에 있던 램프를 넘어뜨려 점화했으며, 이유직(李裕稷)은 사무실 안의 서류를 밖으로 들고나와 불속에 던졌고, 서류통을 앞뜰에 가지고 나가서 불태웠으며, 사무실 안의 석유통을 들고 나와 통을 부수고 석유를 불에 뿌렸으며, 밖에서 들으니 사무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므로 어떻게 된 것인가 하여 뒤에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 물건을 부수는 소리였다고 이발영(李發榮)은 진술하고 있으며 그는 두 번 투석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순사보 강용원(姜鎔遠)의 진술에 의하면 초기에 공포를 1발 쏘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큰소리는 순사보가 쏜 총소리인 것으로 보인다.

이병철(李丙喆)은 책상이나 의자를 부수었고, 가지고 온 횃불로 끄집어낸 물품에 점화했으며, 이흥길(李興吉)은 횃불로 불을 붙인 곳에 부숴진 의자 및 탁자, 서류 등을 던져 넣어 태웠다. 이유만(李裕萬)은 남현서(南玄西)가 횃불을 주어서 그걸 받아가지고 군중이 부수어 쌓아 놓은 책상과 의자에 불을 붙였다. 이오겸(李五兼)은 이희룡(李熙龍)이 의자를 들고 나와 불속에 넣으라 하므로 그대로 했고 이태영(李泰榮), 김기성(金基聲)은 의자와 책상을 들고 나와 불에 넣었다. 특히 김기성(金基聲)이 부엌에 가서 쌓여 있는 솔잎에 불을 붙여 태웠다고 이유항(李裕恒)이 진술했다.

김중식(金重植)도 남현서(南玄西)와 함꼐 여러 명이 사무실에 들어가 의자, 책상, 기타가구, 서류 등을 사무실 앞의 마루로 들고 나와 때려 부수고 자신(金重植)은 안마당에 있던 솔가리(솔가래)를 안고 와서 거기에 횃불로 점화하고 다음에 기물, 서류 등에 불을 붙여 태웠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유항(李裕恒)은 책상을 발로 찼으나 부숴지지 않았으므로 의자를 땅에 던져 부수었다고 했다. 또 실내에서 방화한 것은 이유석(李裕奭), 홍창섭(洪昌燮), 소선옥(蘇先玉), 최재옥(崔在玉) 등 다수가 있었고 자신(蘇輝泰)과 김순구(金鳳鉉(舜九)도 함께 했다고 소휘테(蘇輝泰)는 진술했다. 그리고 남현서(南玄西)가 타고 있는 불에 석유를 끼얹었다고 김중식(金重植)이 진술했다.

최은식(崔殷植)은 주재소에 투석을 하거나 불을 놓은 사람 중에 알고 있는 사람으로 이백석(李白石), 허덕수(許德秀), 남창우(南昌祐), 윤영삼(尹英三), 김중식(金重植), 이선봉(李先鳳), 이중립(李重立) 등이라고 진술했으며, 정성유(鄭聖有)는 주재소 취사장에 쌓여있는 솔가리에 성냥으로 불을 붙였고, 원성삼(元性三)은 사무실의 서류 등을 모았고, 송우필(宋禹弼)은 주재소를 파괴한 사람으로 한춘식(韓春植), 홍기숙(洪奇淑), 정봉안(鄭鳳安), 김원순(金元順), 오익삼(吳益三), 한재호(韓在鎬), 이백석(李白石), 이태호(李泰鎬), 최재익(崔在翊), 최재옥(崔在玉), 김순서(金順西), 김희식(金熙植), 최만종(崔萬鍾), 이업동(李業童)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김봉현(金鳳鉉)은 사무실에 들어가 의자, 책상을 부수고 그것을 그 근처의 판자 담장에 점화한 불에 던져 넣었다고 했다.

이규완(李圭完)은 부엌에 가서 쌓여있는 갈비에 가지고 있던 성냥으로 불을 질렀다고 했고, 증인 최관섭(崔寬燮, 원곡면 외가천리)은 이석근(李奭根)이 몽둥이로 주재소 건물을 부수거나 유리창를 깨뜨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남현서(南玄西)가 사무실 안에서 서류뭉치를 뒤뜰로 던져낸 곳에 최은식(崔殷植)이 와서 쪼끼에서 성냥을 꺼내어 서류뭉치에 점화하려 했으나 불이 붙지 않자, 그는 취사장에 들어가 솔가리를 가져와서 성냥을 그어 먼저 솔가리에 점화하고, 점화된 솔가리로 서류뭉치에 점화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그것을 남현서(南玄西)가 창틀 및 판자가 부서져 있는 곳으로 나와서 점화된 서류뭉치를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 곳에 조경수(趙敬秀)가 석유통을 들고 와서 불이 타고 있는 곳에 던져 넣어서 화력이 세어졌는데 그가 이불을 씌웠더니, 그 때문에 굉장한 세력으로 불이 타오르게 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남현서(南玄西)가 불이 붙은 서류뭉치를 실내에 들고 들어갔기 때문에 주재소가 전소되었는가 하는 신문에 최관섭(崔寬燮)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또한 증인 최관섭(崔寬燮)은 불은 주재소 어디에서 타 올랐는가라는 신문에 사무실 안이 온통 불바다가 되더니 건물에 옮겨 붙었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아 여럿이 점화했으나 불은 사무실 안에서 먼저 발화가 되었고 조경수(趙敬秀)가 석유통을 던지므로 굉장한 기세로 주재소가 불탄 것으로 보인다.

문은성(文殷成)은 이석근(李奭根)이 사람들에게 이놈들 도망가지 마라 라고 소리쳤다고 했고, 원곡면장 남길우(南吉祐)와 면서기 정종두(鄭鍾斗)는 정인규(鄭寅圭(文五)와 남시우(南時祐)가 양성주재소에서 만세를 부르고 주재소에 돌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최병일(崔秉一)은 자기가 주재소에서 두 번 투석했다고 했고, 이국상(李國相)도 두 번 투석했다고 했으며, 이규동(李圭東)은 주재소 부근에서 돌을 주워 앞쪽의 유리문에 세 번 던졌다고 했고 이오영(李五榮)도 두 번쯤 사무실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다고 했다. 증인 문은성(文殷成)은 정인규(鄭寅圭(文五)가 파출소 마당에서 춤을 추었다고 증언하고, 증인 순사보 강용원(姜鎔遠)도 그 날 밤 정인규(鄭寅圭)가 군중에 앞장서서 주재소 마당에 들어가 춤을 추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증인 지문리 최병관(崔炳觀)집 머슴인 이산봉(李山鳳)의 증언에 의하면 최탁봉(崔卓鳳)이 주재소에 투석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임성운(任成云)은 수 개의 돌을 던졌다고 했으며, 정일봉(鄭一鳳), 이준기(李俊基), 전수만(全守萬), 장덕관(張德寬), 홍경운(洪敬云), 장원심(張元心), 김정원(金正元), 이광국(李光國), 이한기(李漢基), 김창섭(金昌燮), 서완득(徐完得), 박용업(朴龍業), 최문섭(崔文燮), 강봉돌(姜鳳乭), 이규창(李奎昌), 박동돌(朴同乭), 염만흥(廉萬興), 이인군(李仁君), 이병문(李丙文), 이상근(李相根), 이순기(李舜基), 이경관(李敬寬, 李洪烈), 안철재(安喆載), 이상옥(李相玉), 이찬영(李燦榮, 남장우(南璋祐) 등도 앞유리창, 또는 바깥 창에 투석했으며 이영우(李英雨), 최문섭(崔文燮) 이호익(李鎬益, 李萬福), 최만보(崔萬甫), 이대근(李大根) 등은 만세를 불렀고, 이로 미루어 투석과 방화, 그리고 만세 부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여러 명에 이른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사람이 많았으므로 한 곳에만 돌을 던지거나 불을 붙인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불씨를 가지고 문짝이나 기타 불이 붙을만한 지점에 불을 붙이므로 속히 불이 타올랐고 주재소에 불이 확산 되자 일제히 물러나 만세를 불렀다.

김태수 전 안성3.1운동기념관장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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