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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최초 바둑 여성 프로기사 탄생.. 18세 김희수 프로 입단 바늘구멍 ‘뚫었다’

맞벌이 김진섭·유은경 부부 1남 1녀 중 막내
“공부보다 잘할 수 있는 바둑 선택 후회하지 않는다”

기사입력 2022-06-2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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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안성 최초 바둑 여성 프로기사.

18세 김희수가 안성 최초 프로 여자 바둑기사로 탄생 된 것이 확인되며 화제다.

안성에서는 지난 2008년 이호범 7단이 프로 바둑기사로 입단된 후 30년 만에 두 번째고, 여성으로는 김희수가 처음이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지난 5173명만 통과하는 제57회 여자 입단대회에서 안성 출신 김희수가 패자 부활전에서 승리하며 바둑 프로기사 입단의 높은 벽을 뚫었다.

이날 입단한 김희수 초단 등 3명이 추가되며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400(남자 322, 여자 78)이 됐다

1945년 한성기원 설립 이후 1990100명을 넘어섰고, 2005년에 200, 2015300명을 넘겼다.은퇴 및 작고한 프로기사를 포함해도 대한민국에서 502명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전체에서 배출된 바둑 프로기사는 502명이지만 은퇴 및 작고한 기사를 제외하면 현재 한국기원 소속 400명 대한민국 프로기사 중 한 명이 됐다는 것이고, 400명 중 여성 기사 78명 가운데 한 명이 안성 출신 김희수 초단이라는 것이다.

바둑은 흑과 백이 겨뤄 많은 집을 지은 쪽이 이기는 게임으로 BC 5세기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했고, 고구려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보내 바둑을 두게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고, 한국, 일본, 중국이 참여하는 국제대회에서 한때 한국이 전승을 기록하며 국민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프로기사의 프로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로 만 18세로 아직 미성년인 김희수 초단이 쟁쟁한 이창호, 이세돌, 유창혁 9단 등 국내외 프로 바둑 기사들과 프로바둑대회에서 같은 조건으로 당당히 마주 앉아 겨룰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1972년 5월 5일 신인 서봉수 초단이 조남철 8단을 꺾고 명인전을 우승하는 대이변이 연출됐고, 1988년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유창혁 당시 3단이 대왕전에서 조훈현 9단을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프로기사로 승단한 기사(棋士)들 사이의 실력 차이가 없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렇게 이름만 들어도 많은 국민이 아는 바둑 프로기사와 맞대결할 수 있는 어려운 자격을 안성에서 여성 최초로 그 장벽을 뚫은 바둑의 고수(高手)가 김희수 초단이다.

입단 다음 날 김희수 초단은 당시 한국기원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대회를 앞두고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한 판, 한 판 두면서 잊을 수 있어 즐겁게 임했다. 최종라운드에서 1패를 안았지만, 내년에 기회가 있으니 오늘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고,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입단대회에서 아깝게 탈락 후 이번에 입단한 김희수 초단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4, 이날 아버지 김진섭(서운농협), 어머니 유은경(미양농협)와 함께 이날 군대에서 제대한 오빠 김범수를 맞아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본지를 방문했다.

 

김희수 초단 가족. 좌로부터 김진섭(부), 김희수, 김범수(오빠), 유은경(모)

이렇게 빨리 프로가 된 경우는 없었다
김희수 초단은 안성 바둑인의 자부심이다

김희수 초단과 어머니 유은경 씨에 따르면 김희수 초단의 바둑 입문은 우연이었다.

맞벌이하던 김진섭·유은경 부부가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 맡길 곳을 찾다가 어머니 유은경 씨의 언니의 자녀들이 다니는 안성영재바둑학원(원장 오승환)을 보내게 됐다.

그곳에서 비룡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오빠와 이종사촌들과 취미로 바둑을 시작했지만, 5학년과 6학년에는 너무 힘들고 지쳐 햇수로 2, 1년 반 정도를 쉬기도 했다.

어머니 유은경 씨에 따르면 “2014년 비룡초등학교 4학년 때 김희수 초단의 기재성(奇才性)을 알아본 바둑학원 원장이 바둑을 집중적으로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시켜보니 아이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생활하고 싶다고 해서 5학년부터 쉬었다. 쉬는 동안에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학원도 다니고 공부를 해봤지만, 재미없어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리고 김희수 초단은 쉬고 있는데 바둑학원에서 전국소년체전에 나가 보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엄마에게 나가기 싫다고 했지만, 엄마가 재미 삼아 나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경기도 대표 선발전에 나갔고 단체전 3명에 뽑히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하며 그리고 소년체전에서 저는 이겼지만, 팀이 져 메달은 따지 못했다. 그래도 2년 쉬고 참가해 8강까지 가며 바둑이 내가 잘하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바둑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바둑을 시작한 김희수 초단은 다시 1년 뒤인 2017년 명륜여중 1학년 때 다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여해 동메달을 따게 되고 이후 명륜여중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둑 기력 향상에 전념해 왔다.

그러다가 2021년 서울 바둑 도장 유학 첫해에 여자 입단대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올해 다시 도전해 입단을 통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둑에 전념하며, 가끔 고등학교가 가고 싶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래 아이들의 일상이 나오는 유튜브로 보거나, 코인 노래방 가서 노래를 부르고, 여행이나 놀이공원에 가서 풀기도 한다는 김희수 초단.

공부보다 잘 할 수 있는 것. 어느새 잘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바둑. 그 바둑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목표는 꾸준히 성장하는 기사가 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히며 활짝 웃었다.

김희수 초단이 다녔던 안성영재바둑학원 오승환 원장은 이렇게 빨리 프로가 된 경우는 없었다. 특출난 거다. 보통 지역에서 바둑 입문하고 서울 바둑 도장으로 유학 가 510년 걸려도 힘들다. 수많은 지망생이 포기한다. 그런데 김희수 초단은 서울 유학 9개월여 만에 입단했다. 김희수니까 이겨낸 것이라고 밝혔다.

소식을 듣고 신문 광고와 제보를 했던 윤상돈 안성 바둑사랑 동호회회장은 김희수 초단은 이호범 7단과 함께 안성에서 2명뿐인 프로기사고 안성 최초의 여성 바둑 프로기사라며 그들은 안성 바둑인들의 자부심이다. 김희수 초단이 대한민국과 세계 최고의 바둑 프로기사가 되길 기원한다. 정말 축하한다고 말했다.

김희수 초단은 만 18세로 제도권 교육으로 보면 고등학교 3학년이다.

또래 아이들은 취업과 대학입학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많을 시기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는 바둑을 선택한 김희수 초단.

제도권 학교의 학업성적을 통한 경쟁이 아니어도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도전해 당당히 자신의 길을 찾은 김희수 초단의 무궁한 성장을 기원해 본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맡길 곳 없어 우연히 선택한 바둑학원에서 또래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도전하는 김희수 초단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며 지지해 주었던 가족에게도 축하의 말을 전해 본다.

최용진 기자 news660@naver.com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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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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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안성신문
    2022- 06- 26 삭제

    愛棋家님 지적대로 1972년의 오기인 것이 확인되어 수정했습니다. 1972년 5월 5일 제4회 명인전 도전5번기 제4국에서 승리해 우승한 것을 1997년으로 오기했습니다. 奇才와 棋才 중 奇才를 선택한 것은 바둑을 잘 두는 재능(棋才)과 아주 뛰어난 재주. 또는 그 재주를 가진 사람(奇才) 중 奇才를 택한 것입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愛棋家
    2022- 06- 26 삭제

    서봉수 초단이 조남철 명인을 이긴 것은 1997년 아니고, 1972년 아닌가요? 그리고 바둑의 재능인 기재는 奇才가 아니고 棋才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