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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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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개(氣槪)와 용기(勇氣)

기사입력 2026-07-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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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안성4.1독립항쟁 기념사업회 회장

[기고] 기개란 사전에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라고 되어있다, 절개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우리나라 역사를 통하여 숱하게 많지만 논개도 그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조선조 개국 시 절개를 지킨 사육신, 생육신은 너무도 많이 알려진 절개의 산 증인이다.

그런데 나는 일제시대 초기 대한제국의 국민들도 절개와 부역의 순간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겪어야만 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물론 공개된 석상에서 빼앗긴 조국을 찾겠노라 선언한 열혈 애국지사도 있지만, 소리 없이 조여 오는 일제의 마수 앞에 결연한 결심으로 구국의 심중을 굳히고 행동에 옮긴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님들도 여러분 계시다.

아니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속된 말에 순간의 결정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중요한 한 순간의 결정이 한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장기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이 되는 경우가 우리네 삶의 편린을 통하여 아니면 역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가 있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정자의 소홀함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역사에 외침을 당한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배운바 있다. 1905년 을사보호늑약,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하여 우리는 쓰라린 식민지경험을 한바 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그 쓰라린 식민지민의 삶을 몸소 겪었던 세대는 거의 세상을 하직하시어 당시의 쓰라린 체험이 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워서 또는 읽어서 당시의 상황을 인식하기는 하지만 겪은 만큼의 강도는 훨씬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공감은 한다지만 당시의 그 분들이 겪은 그 아프고 쓰라리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고문의 참상과 머리끝까지 처 오르는 분노의 시종을 당한 사람이 아니고는 실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 곧 빼앗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절박한 선택의 순간에 대부분의 선량한 민초들에게는 그냥, 그렇게 흔들리는 데로 버터야 하는 층들도 있었지만 그 외 나머지 두 종류의 부류에게는 심각하게 닥아 왔을 것이다. 편하고 영화로운 삶이되 친일 반민족, 매국노의 삶이냐, 아니면 춥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아니 더 나아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내어 버려야 할 절명의 순간도 각오해야 하는 그 길, 바로 구국의 길이 신명(身命)앞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많은 대상자들이 장고(長考)하지 않고 신속히 판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사항은 국운이 달린 중대사항이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을 테니까!

애국지사들께서는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참담하기 이를 대 없는 고난의 길을 택하사 평화롭고 안정된 일상의 삶을 삽시간에 차버리고 사지나 다름없는 구국의 길로 들어섰기에 그 길이 위대하고 그 덕목을 기개와 용기라고 우리는 칭송하며 선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 터를 잡고 단일민족으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한민족의 정통성을 면면히 이어온 이 땅의 선량한 참 백성들은 국혼과 국맥을 부여잡고 비록 그 길이 사지를 넘나드는 죽음의 길일지언정 마다하지 않고 과감하게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것이다.

반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어울려서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신의와 유대속에 함께 살아온 자기들의 한민족을 배반하고 배달민족의 정통성을 내 팽개친 채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한민족의 생존권을 일시에 팔아버리고 약삭빠르게 왜놈천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천박스럽기 이를 데 없는 민족반역자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무수히 보아왔다. 이를 우리는 반민족행위자라 통칭한다. 이러한 배신행위는 배신자에게는 이익이 될지언정 타 공동체 원들의 파멸로 이어지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고대부터 배신하는 사람을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취급했으며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인간의 악행중의 하나라고 이르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신을 선행으로 보는 관점은 없지만 고대-중세에서 더욱 강했다, 법치주의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시대였으니 개인 간의 신뢰와 유대에 더 많이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지옥의 최고 깊은 곳은 배신지옥이며, 그 중에서 가장 깊은 쥬데카에 루시퍼와 함께 있는 인간은 바로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카이사르를 배반한 마르쿠스 부르터스인데 당시의 사람들도 수많은 악귀 중에서 배신악귀를 최악의 악귀라고라고 했음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렇게 해서 우리 선대들이 어려운 시기에 극명하게 분멸되는 두 가지 길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두 가지 삶을 살아온 결과 고난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었지만 쇼펜아우어가 말한 타인을 위하는 자비로운 삶을 산 이들에게는 애국지사의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져 훈장이 수여되고 그분들의 장한 삶을 기리기 위해 그 분들이 몸소 실천한 덕목, 기개와 용기를 본 받고자 하고 있으며, 반대의 길인 자신만의 영화를 위하여 타인을 희생시킨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후세에서도 거침없이 매국노, 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 칭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이미 오래된 실정으로 쇠잔하여 기울어져가는 대한제국에게 1900년대는 몰락의 시대가 되었고, 결국 그 참변이 오고야 말았으니 1910, 역사에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경술국치, 한일합방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으며, 그 결과 백성들은 나라 없는 설움을 처절하게 겪어야 했고, 식민지민의 비참한 삶을 장장 35년여를 감당해야 했으며, 해방이 된 오늘에도 국론은 분열되어 국가발전을 이루는데 큰 장애물을 이루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장의 국사를 통하여도 한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의 탄생에는 꼭 뒤따르는 묵은 역사의 청산이 필수였는데 우리의 근대사에서도 35년여를 지배하던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가고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격변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구시대 청산, 친일파의 응징은 참으로 불행하게도 이승만대통령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오늘까지 성사되지 않아 천추의 한을 남기고 있다.

배신의 아이콘, 민족의 반역자 친일잔재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이 나라의 역사는 바로 서리라 굳게 믿는다.

김태수 안성4.1독립항쟁 기념사업회 회장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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