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기고]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평가한다면, ‘역동적인 주권자’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퇴행하는 정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고 어렵게 민주화가 되었지만, 헌정질서의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9년 동안 대통령이 2번이나 탄핵당한 것은 불행한 사태였다. 이런 사태가 초래된 원인을 보면, 탄핵당한 대통령의 개인적 결함도 있고, 제도적인 결함도 있다.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역량이 미흡하고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그런 권력자가 권력에 도취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권력남용 등을 견제할 장치도 미흡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은 위기 때마다 국가의 중심을 잡아 준 주권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 응원봉을 든 역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여론이 권력자를 견제하고 심판했기 때문에 탄핵도 가능했던 것이다. 최고 권력자를 탄핵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헌법재판소였지만, 실질적인 힘은 국민의 여론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평소 성향이 다른 헌법재판관들이 2차례의 탄핵에서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린 것은 주권자들의 여론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탄핵한 주권자들이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장은 심판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주권자들이 투표로 소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주민소환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투표율이 3분의 1 이상 되어야 개표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 때문이다.
그리고 중앙선관위가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유권해석을 하면서 ‘투표 보이콧 운동도 가능하다’고 해석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 주민소환의 대상이 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투표 불참’을 종용하고 홍보해 왔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소환투표를 하러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기지 못해서 개표 자체를 못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2007년 이후 12건이 실시된 주민소환 투표 중에 소환이 성사된 경우는 2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 2건은 제도 시행 초기였던 2007년 12월 하남시의원 2명이 소환됐던 건이다. 그 이후로는 모두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개표도 못 하고 종료됐다. 그래서 주민소환제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주민소환제도 개선’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국회에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투표율이 4분의 1을 넘으면 개표하도록 하는 개선안이다. 주민소환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을 때 전자서명도 가능하게 하고, 소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도 만 18세로 낮추는 안이다. 이런 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주권 정부라는 말을 쓸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에서부터 주권자들이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도 필요하다. 이번에 필자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세금도둑잡아라와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가 ‘가칭) 주민주권 운동’을 제안했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30년이 넘었지만 공직자들의 사익 추구와 비리, 부패, 예산 낭비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주권자인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7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상대로 강력한 감시활동을 하자는 것이 제안의 요지이다. 그리고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주민소환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명실상부하게 ‘주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다.
1995년부터 2022년까지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 2,111명 중 140명이 각종 비리와 범죄로 임기를 끝내지 못하고 퇴직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그리고 선출직 공직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지역주민들이다. 주민들의 삶의 질이 하락하는 것이다. 특히 비수도권·농촌지역의 경우 의료, 돌봄, 교육, 교통, 주거, 문화, 환경 등의 측면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선출직 공직자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주권자들이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2번이나 심판한 국가의 주권자들을 선출직 공직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